DAVID JEONGHAN PARK

Dr. David Jeonghan Park was born in South Korea and emigrated to South America in elementary school Dr. Park lived in Asunción, Paraguay, during his elementary and middle school years and then immigrated to Buena Park,California, when he was in highschool Dr Park is the Director of Oncology at St. Jude Medical Center in Fullerton, California. He is also the father of Abbi-Hope Jihye Park, a KSP youth participant who attends the Orange County High School of the Arts.

남미로 이동한 한국인

Interview by Abbi-Hope Jihye Park

소속 학생 애비-홉 지혜 박은 2022년 6월 11일 코리아타운에 있는 라디오 코리아 더 게티 25주년 행사에서 그녀의 아버지인 50세의 데이비드 정한 박 박사를 인터뷰 했습니다. 애비의 부모님은 한국에서 온 이민자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1970년대 후반 3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그녀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시절 한국을 떠나 남미로 향했고 그 후 고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왔습니다. 데이비드 정한 박 박사는 캘리포니아 풀러턴에 있는 세인트 주드 메디컬 센터의 종양학과장입니다.

왜 파라과이였나요?

파라과이. 그때 1970-1975년도에 한국에서 이민한 사람들이 많았죠. 미국이나 캐나다, 남미로요. 우리 가족은 남미로 많이 갔답니다. 브라질이나 파라과이로요. 그 중에서 우리 가족은 특별히 파라과이로 갔답니다.

한국 이민자로서 파라과이에 살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음. 제 생각에는 이민생활은 다 힘들다고 생각하는데요. 언어나 문화가 틀리니까요. 새로운 나라에서 인종차별 같은 것도 있으니까요. 특히 저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분들은 고생을 많이 하셨죠. 그리고 직업을 찾거나 갖는 점도 다르죠.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시다 여기서는 영어나 스페인어로의 소통이 안되니까 공장이나 농장 같은 육체노동을 하는 곳에서 일해야 했죠. 아니면 봉제공장 같은 곳에서요. 저의 어머니 아버지는 봉제공장에 다니시며 일을 배웠어요. 그런 점이 힘들었을 것 같네요.

그럼 좋은 점도 있었나요?

파라과이는 가난한 나라였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가난했죠. 70-80년대에는요. 그리고 파라과이의 대부분 사람들은 교육 수준이 낮았어요. 그래도 파라과이 사람들은 되게 친절했어요 처음에는 조금 경계를 해도 지내다 보면 되게 착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친구도 많이 사귀었죠. 그리고 한인 5000명 정도가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 살면서 서로 도와주고 교회에 함께 가기도 했고요. 그런 면에서는 되게 순수하고 좋았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파라과이의 생활에서 있었던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었어요. 그 중 하나를 말씀해주세요.

켄터키 프라이 치킨(KFC) 여기서는 흔한 음식이죠. 그 때 파라과이에서는 KFC가 고급 음식이었어요. 내가 12살 때 1시간을 걸어서 친구랑 다운타운에

있는 KFC에 갔는데 코울슬로 샐러드가 있더라고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코울슬로밖에 살 수 없었어요. 코울슬로 그 조그만거 하나를 사서 먹었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코울슬로예요.

아버지는 항상 저와 쇼핑을 가시면 ‘God bless America!’ 라고 말씀하세요.

맞아 너에게 감사해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어. 파라과이는 가난해서 슈퍼마켓에 가면 음식들이 있지만 미국 슈퍼마켓에는 20가지가 있지만 파라과이엔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가족과 쇼핑을 가면 여기는 기회가 많은 나라인 것이 느껴지고 여기에 온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요.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파라과이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셨는데 그렇게 고생하고 희생해서 희망을 갖고 여기로 온 것에 감사해요. 그게 내가 항상 “God bless America!” 라고 말하는 이유예요.

끝내기 전에 한국계 미국인 아이들, 특히 저와 같은 학생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나 조언이 있나요?

재밌는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해요. 저는 파라과이에서 5살 때부터 15살 때까지 10년을 살았어요. 15살때 부모님이 또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미국 오렌지 카운티의 ‘부에나 파크’라는 도시에 정착했지요. 그때 고등학교를 9학년때 처음 갔어요. 스페인어는 잘했는데 영어는 더 배웠어야 해서 그 첫 달이 정말 어려웠어요. 그때 가방을 넣는 사물함 문제로 수업에 늦어서 가니까 선생님이 화가 나셨더라고. 선생님이 ‘David, why were you late? (왜 늦었어?),’‘Where did you come from?(어디에 있다 오는거야?)’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이해를 못해서 내가 어디 출신이냐고 물으시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I'm from South Korea!(한국에서 왔어요!)”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모든 학생들이 웃고 선생님도 웃으셨지요. 선생님께서 ‘너 정말 멀리서 왔구나. 오늘은 벌점주지 않을게.’ 라고 하셨어요. 처음엔 친구들과 친해지기 어려웠는데 웃고 농담도 하고 하니 친구들도 마음을 열고 다가오더라고요. 아주 창피한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을 통해 친구를 사귈 수 있었지요. 그러니 너희 세대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be proud” 하라는 거예요. 어디서 왔든 자랑스럽게 여기고,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자랑스럽게 여겨요. 왜냐하면 당신은 우리 같은 이전 세대가 열심히 쌓아온 탑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훌륭한 산물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뭐든 할 수 있어요!

아버지, 파라과이에서 미국으로의 이민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이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