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GKOO KANG


JungKoo Kang was born in Gyeongsangbuk-do, South Korea, and emigrated to Kansas in 1975 before settling with his family in Los Angeles, California. He worked in the apparel and manufacturing industry for several decades before becoming the President of the Korean Senior Citizens Association and the Samiljeol (March 1st) Memorial Project He also created the Hanmi Silver Club, a travel and community service organization for older adults in Koreatown.

봉사하고 도우며 살아야죠

Interview by Dale Lee

고향은 어디인가요?

고향은 대한민국 경상북도입니다. 한국에서 수성고등학교를 다녔고, 총 33년을 살았습니다.

미국 이민은 언제 왔나요?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는지요?

미국은 1975년 12월, 자녀들 교육을 위해 이민 왔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됐는지요?

미국으로 처음 와서 고생을 많이 했지요. 1975년도에 2살, 4살, 7살인 아이들 셋을 데리고 왔어요. 당시 아이들이 3명이라 아파트를 얻기 힘들었어요. 이민을 온 직후 일자리가 없어서 바늘 공장에 다녔어요. 거기서 경험을 쌓았어요. 이후 공장도 직접 운영하면서 L.A.다운타운에서 의류사업을 시작했지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도착한 곳은 어딘가요?

미국 이민 당시 캔사스에 친척이 살아서 그곳으로 갔어요. 하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요. 당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려면 L.A.에 가야 했어요. 그렇게 L.A.에 도착했다가 현지에 살던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가 L.A.에서 아파트 찾는 것을 도와줘 눌러 앉았어요. 그 친구는 미국 문화 등 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를 가르쳐줬어요.

미국으로 처음 왔을 때 영어를 배우거나 미국 생활에적응하는 것이 어려웠나요?

가족들과 다 같이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영어를 배울 시간이 없었지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가 일을 했죠.

다운타운에서 했던 의류 비즈니스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한국에 살 때는 옷 장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못했지만, 일이 필요해서 공장부터 시작을 했지요.영어가 서툴렀지만, 공장은 잘 운영이 되었고생활하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 없었지요.

한국에서는 어떤일을 하셨나요?

한국에서는 남대문 시장에서 넥타이를 판매했어요.

미국으로 와서 다른 어려운 경험들이나 인종차별을 겪은 적은 있으신가요?

인종차별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영어도 서툴고 새로운 환경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힘들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올라야 되기 때문에 그런걸 다 참고견디고 살았지요.

지금은 한인타운에서 사시나요?

네, 지금은 행콕팍에 살아요.

한인타운이 지난 세월 동안 변하는것을 어떻게보셨나요?

1976년도에 L.A.로 왔어요. 우리가 처음 한인타운에 정착할 때, 4가와 올림픽 길에 가게들이 조금밖에없었고 집값도 굉장히 쌌어요. 지금은 다 발전해서렌트도 비싸고 집값도 비싸고 전보다 더 활기차지요.

한인타운은 이제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는데항상 그랬나요?

옛날에는 타인종들이 더 많았지요. 전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없었지만, 지금이 한국 사람들이 한60% 차지하는 거 같아요.

아직도 같은 일을 하시나요?

65살에 은퇴했지요. 벌써 한 15년 됐지요.

사업을 하시면서 재미있거나 힘든 경험들이 있었나요?

일을 할 때는 손님만 보고 열심히 생활해야 되니까일에 집중을 했고, 은퇴하고 나서는 사회봉사를 시작했어요. L.A. 한국노인회와 삼일(3∙1)절 기념사업회장을 맡았고,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었지만 여전히궁금한 게 많았어요. 저는 이제 저와 비슷한 역사를가진 한국계 미국인들과 함께 여행하고, 사회봉사와식사도 같이 할 수 있는 한인 실버클럽을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실버클럽 멤버들이 여행할 수 있는기회를 주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한인 단체와는 얼마 동안 일을 하셨나요?

한인 단체에서 한 10년에서 11년 정도 했나 봐요.

단체에서 봉사하시는 동안 겪은 어려움이나 보람이 있었나요?

아들이 선교사라서 은퇴하고 아들을 도와주고 싶었는데, 나는 나이도 있고 불편하고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많은 한국 어르신들이 술이나 도박 그리고 거리를 떠돌아다니려고 하는 것만 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어르신들을 돕고 롤 모델이 되기 위해 대한노인회에 가입하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회장직을 맡게 됐습니다. 올림픽과 8가를 청소했고 봉사활동을 위해 2~4명의 봉사자를 선발해 2년간 봉사활동을 도왔습니다. 2년간의 임기가 끝나고, 저는 영어에 더 능통하고 조직을 더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젊은 사람에게 그 자리를 맡겼습니다. 그 후 저는 삼일절 기념사업 연합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지금은 한인 실버 클럽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종교를 믿으십니까?

기독교를 믿습니다.

종교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교회를 나갔고 거기서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코로나 때문에 2년간 못 나갔지만, 요즘에 다시 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겪은 어려움이 있으신가요?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으니까 답답하지요. 감염될까 봐 겁은 나지만 지금은 한미 실버 클럽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행도 하고 많이 좋아졌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 있으신가요?

코로나로 좋은 점은 내가 지나온 세월을 조용하게 반성하는 기회를 갖는 거지요. 나쁜 점은 답답하고 그렇지만 미국은 경기가 나쁘다고 해도 정부에서 렌트비 보조도 해줘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집에 계신 동안 즐기는 취미나 일은 무엇입니까?

집에 있는 동안 신문 읽고, TV 보고, 스마트폰이 재미있어서 많이 사용했습니다.

미국의 노인 의료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 의료 서비스 말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험을 갖고 있고 한인 타운은 영어를 못해도 한인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병원 가는 것도 편리하고 의료 서비스도 좋습니다. 내가 한국에 살 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는데, 지금은 한국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일단은 여기에서 한 50년 살았으니까 서비스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미국의 노인 의료 정책에 대한 단점과 장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별로 단점은 없고 단지 영어가 서툴고 서류작성이 복잡하지만 좋은 점이 더 많지요.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 주고 정직하고 좋은 점이 많다고 봐요.

한국의 부모님과는 관계가 어떠셨나요?

미국에 들어온 지 오래됐기 때문에 두 분 다 돌아가셨지요. 그때는 부모님이 이민 가는 것을 반대했어요. 서른세 살에 아이 셋을 데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고 반대를 했지만 이미 서류를 제출한 상태였어요.

현재 노인 의료 정책이 과거와 어떻게 다릅니까?

몇 년 전부터 HMO로 바뀌었죠. 그렇지만 한미 연합회나 한인 젊은이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괜찮습니다. 많은 혜택이 있지만 아직 한인들이 제도를 잘 몰라서 많은 혜택을 못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들어서 어떤 변화가 있으신 것 같나요?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고 육체적으로도 활발히 잘 안되고 다 노화현상 때문이지요. 하지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인타운에 대해 어떤 우려나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버스를 기다리는 불편함도 있고 대중교통이 더 개선되었으면 좋겠지만, 내 차로 다니기도 해 크게 불편함은 없습니다.

한인타운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당이나 음식이 무엇인가요?

제가 처음 한인타운에 왔을 때는 식당이 별로 없었습니다. 지금은 식당도 많아지고 음식문화가 아주 발전했습니다. 세계여행이나 다른 곳을 가봐도 L.A.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뉴욕과 시카고도 가봤지만 L.A.가 가장 기후도 좋고 음식도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한국도 맛있다고 하지만 양이 너무 적어요.

어디로 여행을 다니셨나요?

지난달에 56명이 다 함께 관광버스 하나로 자이언 캐니언 2박 3일을 갔다 왔고, 12월 20일에는 지인들끼리 모여서 데스 밸리와 소금 온천을 가려고 해요. 사람들이 비용을 내고, 호텔에서 자고, 호텔 뷔페에서 밥도 먹고 온천도 즐길 예정이에요.

현재 세대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세대는 먹고살기 위해서 많은 고생을 했어요. 요즘 젊은 분들은 굉장히 현명해요. 물론 우리 세대는 젊은 세대와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원칙대로 하려고 하고 생각들이 건전한 것 같아요. 이렇게 똑똑한 아이들을 보면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어린 나이부터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한국에서 유학 온 아이들과는 다른 생활방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자란 아이들이 더 정치에 관심이 있고 참여하는 거 같아요.

현재 정치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가요?

모든 정치인들은 처음에는 카리스마 있게 나오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대부분 부패하게 됩니다. 미국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비록 정치인들이 당은 달라도 국가를 위해 서로 밀어주고 하는데, 한국은 너무 개인의 성공을 중심으로 정치하는 것 같아요.

첫사랑을 어떻게 만났나요?

우리는 그때만 해도 옛날이니까 소개받아가지고 결혼해서 애 가지고 그렇게 살았지요. 지금은 서로 좋아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가난할 때 한국에서는 생활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생활을 위해 이렇게 만나고 그랬죠. 그러다 아이가 생기고 결혼생활한 지가 벌써 60년이나 지났네요.

자녀분들과 관계는 좋으신가요?

다들 결혼하고 따로 살지만 자주 만나요.

손자 손녀는 있으신가요?

손자가 여덟 명이에요. 아들이 둘, 딸이 하나인데, 거기서 손자 손녀가 여덟 명이에요.

지난번 인터뷰 때 들은 내용으로는 한인타운 올드 타이머로서 한인타운에서 많은 봉사를 하셨습니다. 한인 사회에서 일하실 때 어떤 문제가 가장 해결하기 어려웠고 어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습니까?

저는 주로 노인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옛날 노인들과 지금 노인들의 사고방식이 차이가 있어가지고 설득을 할 때는 조금 힘이 들 때가 있었고요. 이제 그 노인들이 옛날 사고방식을 버리고 현대의 새 문화를 받아들일 때는 보람을 느끼고 그렇죠.

L.A. 폭동을 겪으셨을 때 느낀 점들이 있으신가요?

L.A. 폭동이 일어났을 때 저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는 라디오 코리아에서 많은 한국인들을 위해 공헌을 했어요. 재산피해에 대한 모금활동도 활발하게 해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어요. 감사하게도 제 비즈니스는 다운타운에 위치해 있어서 별 지장은 받지 않았지만 큰 아픔이지요. 한인사회에서는 굉장한 아픔이었고, 그게 이제는 치유되었지만 일부 모금에 관련해서 조금 문제가 있어서 씨끄러웠지요. 그걸 보면서 참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한인들도 이렇게 좀 더 깨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그런 바람이 있었지요.

어떤 비즈니스를 하셨나요?

저는 다운타운에서 옷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봉제공장을 했지요.

의료보험 제도가 HMO로 바뀐 후에 어르신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나요?

HMO라는 제도가 처음 들어왔을 때 노인들이 영어도 서툴고 하니까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었고, HMO를 가입하면 병원 의사도 선택하고 이런 게 조금 불편한 점이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전문의 진료가 빨리빨리 안 된다고 그러는데, 저는 크게 아픈 데가 없어서 그런지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어요. HMO 제도가 그런대로 괜찮다고 봅니다.

한국에 남아계신 가족들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팔남매인데 칠형제는 다 한국에 있고 나 혼자만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 한국의 가족들과 연락을 하나요?

아, 당연하죠. 전화도 수시로 하고, 뭐 한 3~4년에 한 번씩은 한국에도 나가고 이렇게 합니다.

한국을 갔을 때 미국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문화적인 차이가 많지요. 왜냐하면 미국 문화는 실용주의고 한국은 삶의 질에 더 집중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명품은 들고 다녀야 되고, 미국에는 작업복을 입고 돌아다녀도 되지요.

미국이 한국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에게 배울 것이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형식적인 것이 많고 체면을 굉장히 중요시해요. 미국은 그런 것이 좀 적지요. 그리고 미국 사람들이 한국 문화에서 배울 것은 효도와 가족에 대한 강조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기서 효도를 많이 보지 못했고, 미국에서는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 차이가 굉장히 크다고 보지요.

코로나 기간에 우울증이나 외로움을 느끼신 분들이 늘었다고 들었는데 주위 분들 중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으신가요?

우울을 많이 느끼는 분이 내 주위에서 있었고, 내가 아는 분들 중 한 5~6명이 코로나19나 노환으로 돌아가셨어요. 나도 우울증이 조금 있었고 그냥 TV나 보고 뉴스만 듣고 있었죠. 이제 코로나가 좀 많이 나아졌으니 그때 내가 생각해 낸 게 노인들을 좀 치료를 해야 되겠다 싶어 가지고 관광을 시작했어요. 한미 실버 클럽이라고 친목 모임이지요. 정식으로 퍼밋도 내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세 번째로 여행을 가요.

한인단체가 지금 그 가족들을 도와주고 있나요?

한인단체 중에서는 건전한 단체들이 있어서 한인사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요. 그런가 하면 어떤 단체는 코로나를 이용해서 자기네 이익을 도모하는 경향도 있어서 가끔 내 눈에 거슬립니다.

추수감사절 연휴에는 뭐 하실 거예요?

예전에는 추수감사절에 교회에서 주관을 해서 행사를 했고요. 또 다른 종교 단체에서도 했다고 봅니다. 올해는 추수감사절이 25일이니까 2~3일 남았는데 주로 가족끼리 모여서 즐길 것 같아요. 가족끼리 친목도 도모하고 안부도 묻고 그렇죠. 우리도 우리 가족끼리 모이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추석 행사가 있는데 한인타운에서도 그런 행사가 있나요?

한인타운은 주로 추수감사절에 행사가 있지요.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또 임박해 오니까 겸사겸사 이렇게 하지요. 망년회 겸 송년회 겸 이런 행사가 좀 많지요. 그리고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준비하고 있지요. 한국은 사실 추수감사절이 아니고 음력 8월 한가위 추석이 있잖아요. 그게 한국에서는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여기서 추수감사절과 추석을 이중으로 지내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포기를 해야 될 것 같아요.

한미 실버 클럽에 대해서 지난 인터뷰에 말씀을 하셨는데 그 세 번째 여행은 어디로 가시나요?

코로나 때문에 좀 서로 갑갑하고 그런 것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1년을 보내는 거니까 그걸 추억으로 새해를 맞이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자는 뜻으로 연말 망년회 겸 여행을 준비했어요. 그래서 몸도 깨끗이 하고 그런 뜻에서 온천도 갈 겁니다. 추수감사절하고 또 크리스마스 때니까 라스베이거스 가서 야경도 보고 나무도 보고 아주 좋지요. 그렇게 세 군데를 갑니다.

미국 노인 의료 정책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옛날과 서비스가 많이 바뀌었나요?

기본 정책은 바뀌지 않고 해마다 혜택이 조금씩 바뀔 때가 있어요. 그게 뭐 이렇게 큰 변동은 없고 조그만 변동이 있는데 처음에 할 땐 노인들이 적응하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다 잘하는 것 같습니다.

노인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나요?

나는 의료전문인이 아니니까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첫째 영어가 조금 소통이 안 되니까 어렵고 그렇지만 나는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어요.

미국과 한국의 노인 의료 서비스에 큰 차이가 있나요?

한국에서 안 살아서 정확히는 모르는데 미국은 잘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뭐 듣기로는 한국도 지금 의료시스템이 굉장히 발전해가지고 오히려 미국보다 더 발전했다고 뉴스로 듣고 있는데 저는 자세한 건 모르겠네요.

코로나 기간에 정부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실행하거나 변동했어야 하는 것들이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고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작년처럼 너무 고립을 시키면 경제에 문제가 되잖아요. 경제도 생각해야 되고 아마 정부에서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