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lla Pak

Stella Pak arrived in Hawaii in 1976 from South Korea. She and her husband worked for nearly 40 years in the U.S., where her son and daughter were born. Despite raising her children to speak Korean and observe Korean values, she talked about her children’s eventual assimilation into American culture. Stella discussed being older and middle class in America, the lack of financial security without a decent pension, and the rise in anti-Asian violence from the 1992 civil unrest to the COVID-19 pandemic.

해외에서의 육아

Interview by Cailey Beck

미국으로 이민 오는 경험은 어떠셨어요?

이민 오는 경험은 그래도 어려움 없이 잘 왔어요. 제가 1976년도 2월에 하와이 거쳐서 왔거든요.

이민 오면서 어려운 경험은 있으셨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제가 미술 선생을 했는데 그때 학생들한테 영어도 가르쳤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오히려 영어로 소통도 잘했어요. 그런데 여기 살수록 점점 못하게 되네요. 그리고 저는 미국 사회에서 시니어니까 아직까지는 혜택 같은 거를 많이 못 받고 있어요. 미국에 와서 일 안 했던 사람들도 아파트 렌트비도 싸게 내고 Medi-Cal 같은 정부에서 주는 혜택들을 많이 받고 있어요. 세금 안 내고 일하는 사람들이 지금 굉장히 많이 받고 있는 혜택들을 저는 못 받고 있어요. 또 그렇다고 연금을 막 충분하게 받는 것도 아니고 생활비가 모자라서 점점 미국생활이 힘들어져요.

그런 상황도 있는지 몰랐어요. 되게 불공평한 것 같네요. 미국이 공평한 것 같지요?

저도 제가 젊었을 때는 정말 미국만큼 노력하는 대로 수입이 있는 곳은 없고 미국 생활은 너무나 공정하고 좋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65세까지 일을 해도 연금이 별로 많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렌트비는 점점 많이 올라서 현재 한 달에 1,400불 내고 있는데 그나마 이게 시니어 아파트라고 해서 저렴한 편이에요. 전혀 일 안 하고 미국에 와서 그냥 자식들 기르면서 사는 분들 가끔 보면 아파트값도 전부 300불 미만으로 내고 있대요. 세금을 안 내고 수입이 없으니까 정부의 혜택이 많아요. 미국은 아주 부자거나 아주 가난하지 않은 중산층이면 삶이 어렵더라고요. 애들 학교 다닐 때도 자영업 하는 사람들은 세금 보고를 조금 하니까 애들한테 돈 안들이고 교육 다 시키더라고요. 우리는 W-2 폼이 다 나오니까 저희 애아빠하고 저하고 열심히 사람이 저 한 명밖에 없었어요. 제가 한인 커뮤니티를 조금 도와주고 싶다 그러니까 혹시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 전화번호로 연락해서 기부해 달라고 그러니까 협조해 달라고 그랬어요.

전에는 제가 느끼지 못했는데 직장 사람들이 한인들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그 사건으로 인해서 한인에 대해서 더 많이 알려지고 거의 좋게 된 것으로 생각을 했었어요. 한인 사람들이 사업하고 돈 많이 버는 것 위주고 엘에이의 발전을 위해서 기부하거나 이런 것들에 참여를 안 한다는 식으로 외국 사람이 한번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아니 한인 사람들은 정말 서로를 도와주고 좋은 관계들을 가지고 사는데 왜 그런지 이해가 안 간다고 제가 얘기한 기억이 나네요.

그다음부터는 특별하게 인종차별을 느끼지는 않았어요. 교육 수준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안 그래요.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조금 좋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러는데 또 콤플렉스나 생각이 조금 잘못된 사람들이 있잖아요. 한인들이 미국에 와서 잘 살고 열심히 노력한 것에 결과지만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교육 수준도 낮고 또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사람이죠. 그런 사람들이 지금 동양 사람들을 막 공격하고 그러죠, 정상적인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요? 물론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왔고 한인들도 외적으로 보면 그저 동양 사람으로 보이니까 운 안 좋게 당하는 경우지 그 사람들이 무슨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그러겠어요? 그냥 동양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자리 잡고 잘 살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옮겼다면서 괜히 오해하는 것 같아요.

제가 1976년에 와서 그래도 직장 생활을 한 삼사십 년 이상 했으니까 많은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일해보고 했는데 한 번도 제가 인종차별로 인해 억울하고 그런 적은 없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일한 만큼 저는 수입이 있는 거고 인종 때문에 뭐 하지 말아라 해라는 안 들어봤어요.

직장에 백인이 많이 근무했나요?

백인들도 많았고 물론 다른 인종도 있었어요. 한국인과 중국인 부부가 함께 일했었고 또 일본 사람이 직장을 그만둬서 제가 들어간 경우가 있었어요. 필리핀과 히스패닉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저 한두 명 정도였고 거의 백인들이었어요. 백인들은 참 친절했어요.

백인들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오해한 경우가 있었나요?

그런 경우도 있었지요. 저는 처음에 직장 들어갔을 때 저 보고 일본인이냐 아니면 홍콩에서 왔냐고 묻기는 했어요. 그래서 한국인이라고 했는데 그때 당시만 해도 1970년도니까 사람들이 한국이 어디인지 몰랐어요. 대한민국이 어디 있냐고 그래서 제가 지도를 가져다가 내가 여기에서 태어났고 토끼처럼생긴 이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알려줬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한국인들은 부지런하고 깔끔하다고 좋게 평가를 했어요. 그래서 나는 한국인인 사실이 굉장히 자랑스러웠고 내가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했어요.

K-pop 등 한국 문화가 한류를 통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지요. 사실 아이를 기르고 직장도 다니고 교회 일도 하다 보니까 정말 티비 볼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코리아 연속극도 제가 보지를 못하고 살았어요. 그랬다가 제가 한인 많은 코로나[리버사이드 카운티]에 살았는데 네다섯 가정이 있어서성경공부를 같이 했어요. 그때 사람들이 연속극 얘기를 해서 그때부터 제가 보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시간이 없으니까 어쩌다 한번 보는 거였지요. 저는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서 열린음악회를 조금 보는 정도지 지금은 그냥 뉴스만 봅니다. 자꾸 CD 같은 것을 빌려서 보고 해야 하는데 제가 은퇴한 지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케이팝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제가 교통사고 나고 몸이 좀 안 좋았어요. 그래서 티비 볼 시간이 있으면 나가서 조금이라도 더 운동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대신 공원에서 산책을 해요.

저는 정말 좋아요. 우리 한인 젊은이들이 참 예술적이고 음악도 아주 뛰어난 것이 너무 감사해요. 우리 애들이 그런 걸 좋아하면 좋을 텐데 얘네들이 공부에 몰입하다 보니까 한국 예술 문화 같은 걸 못 봐서 좀 아쉬워요. 내가 그래서 애들한테 자꾸 전달해서 보라고 그러는데 잘 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혹시 여기서 태어나셨나요?

카일리: 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한국말 잘하시네요. 여기에서 가까운 데서 공부하게 되셨으니까 아주 큰 축복이네요.

카일리: [웃음] 네,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그래요 얼마나 좋은 지 몰라요. 우리나라 말 자꾸 지금 사용하시는 거 좋아요.

혹시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제 말을 잘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물어보신 대로 제가 성심성의껏 답변하려고 했고 우리 한인 커뮤니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감사하죠. 저는 그냥 단순하게 살아서 제가 무슨 크게 겪은 게 있거나 외국 사람으로부터 차별을 받았던 적은 없습니다. 초창기에 아무래도 영어를 잘 해도 우리가 한국에서 쓰던 영어를 여기 와서 써보니까 발음이 조금 다르더라고요.